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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영선생님 라오스 통신3

작성자 : 백재중 2011.01.14

고은영선생님이 보내오신 글을 대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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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을 걷다 보면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게 되고, 때문에 국제 도시같다는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선진국의 국제 도시들과는 다른 의미에서지만요. 등에 몸길이 반은 좋이 되는 거대한 베낭을 짊어지고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가 어딘지 물어보는 젊은 베낭족들, 손에 카메라와 여행 가이드북을 들고 한가로이 거리를 거닐며 가게들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  저녁이면 중심가의 바나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한 잔 걸치는 사업가들이나 유엔 직원들, 비정부 기구 활동가들….이들의 곁을 지나치다 보면 온갖 나라의 언어를 듣게 됩니다. 영어, 불어, 스칸디나비아어, 이태리어, 중국어, 인도어….이들은 저마다 이 나라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왜 라오스가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런 국제 도시의 풍모는 라오스뿐만 아니라 전에 제가 일한 적이 있는 아프리카나 중미의 최소 개발국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 시에라 리온의 수도 프리타운, 하이티의 수도 포르 또 프랭스는 모두 관광객이든 일하는 사람이든 외국인들이 많고 이들의 소비 활동이 수도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단지 비엔티안은 비교적 최근에 내전을 겪고 현재 평화를 찾아가고 있는 프리타운이나, 갱들의 도심지 폭력 때문에 해지고 나면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포르 또 프랭스에서처럼 안전 문제가 없고, 미로처럼 복잡한 슬럼가들이 늘어서 있는 이들 도시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평화로운 느낌이 드는 도시라는 점이 다를 뿐이죠.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 특히 사하라 이남 지역의 나라들이 세계 최빈곤국들에 속한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대륙별로 따진다면 그래도 아시아 지역의 최소 경제 개발국들의 정부가  비교적 더 거버넌스 능력이 있고 개발 의지가 강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라오스는 이 아시아 지역에서 아직도 여러 부문의 개발을 위해 경제적, 기술 지원적으로 해외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라오스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630 USD로 여전히 낮고 보건 의료비 지출만 봐도 전체 지출의 30%가 해외 원조에 의지할 만큼 대외 원조 의존률이 높습니다. 라오스의 이런 상황 때문에 비엔티안이 국제 도시의 면모를 띠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이런 개발 원조에 참여하는 나라, 기구, 단체들이 많다보니 부수적으로 생기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보건 의료 분야에 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일단 누가 어디서 어떤 규모로 무슨 활동을 언제까지의 계획으로 할 것인지 알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지도 그림이 있어야 어떤 활동이 겹치고 어떤 활동이 부족한지 알 수 있고 보다 효율적이고 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원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또한 정부에게 이런 활동들을 조율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보다 장기적이고 전국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끔 주인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이런 자율권을 행사하기 힘든 경우도 생기고요.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05년에 원조 효율성을 제고하며 다양한 개발 파트너들 상호간의 협조 및 조율을 촉구한 파리 선언을 이어받아 2006년 라오스 정부가 비엔티안 선언을 발효하고 다양한 개발 파트너들 사이의 조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WHO는 보건 의료 부문에서 국가의 중요한 보건 의료 정책을 만들고 실행가는데 중요한 기술적 자문을 해 주면서 이 부문간 조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라오스에는 외국 정부 기구나 유엔 기구말고도 비정부 기구들도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월드 비젼, 세이브 더 칠드런, 아드라 (ADRA) 등의 굵직굵직한 비정부 기구들이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고 보다 작은 규모의 비정부 기구들도 병원이나 학교같은 시설 단위나 지방의 군단위에서 개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보다 독립적이라서 정부의 조율 메카니즘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재단 사업지인 시엥쾅도와 후아판도에서도 누가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는 중앙 보건부보다는 직접 지방 보건 당국에 물어보는 편이 더 빨리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비정부 기구들 중에 지난 11월 말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세이브 더 칠드런 호주 지부(이하 약칭 SCA)의 일차 의료 강화 프로그램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재단에서 올해 초 해외 원조 사업 사례 응모전을 했고 이 중에 우수한 사례를 선보인 카톨릭 성모 병원, 부천 순천향 병원, 세이브 더 칠드런 한국 지부의 활동가 세 명에게 라오스로 현장 답사 지원을 해 준 것이죠. 재단의 홍보팀장님까지 네 분이 같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차에 저로서도 전부터 방문하고 싶었던 루앙프라방의 SCA의 사업지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죠.

SCA의 일차 보건 의료 사업은 2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른 개발 파트너들에게는 귀감이 되고 있는 사업입니다. 여기에는 캐롤이라는 호주 출신 산파의 장기간의 걸친 헌신적인 활동이 큰 몫을 담당했지요. 제가 처음 라오스로 왔을 때 읽은 여러 자료 중 SCA에서 내 놓은 일차 보건 의료 사업 설명 리플렛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SCA는 1992  년에 처음 라오스 사야부리 도의 2개 군에서 4년 단위로 일차 보건 의료 강화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다시 4년의 연장 기간을 거친 뒤 이후부터는 4년마다 4개 군씩 똑같은 사업의 틀을 적용해 확장을 해 마침내 16년이 지난 뒤에는 사야부리 도의 모든 10개 군을 다 커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사업의 책임자인 캐롤은 사야부리 도에는 최소한의 유지비만 지원하면서 루앙프라방도의 일개 군인 난(Nan) 군에서 같은 사업을 시작했고 3년의 사업을 마친 뒤 현재는 난 군을 비록한 다른 2개 군으로 사업을 확장한 상태에 있습니다.

저희 방문에 대해서는 미리 수도에 있는 SCA세이브 더 칠드런 사무소장인 매트와 루앙프라방 지방 사무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캐롤에게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 이번 방문객 중에서 SCA 한국 지부에서 온 사람이 끼어 있기도 있거니와  제가 WHO 모자 보건팀에서 일하고 있고 라오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SCA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더니 흔쾌히 제의를 받아주더군요. 연말이라 다른 일정으로 바쁠 터인데 내심 고마왔습니다.

일행이 도착한 다음 날 오전에 WHO 사무소에서 WHO/재단 사업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해 드리고 WHO 국가 사무소장인 안 동일 선생님과의 짧은 면담과 격려 말씀을 들은 후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약 40분간의 비행 후 저희는 루앙프라방 도에 도착했습니다.

루앙프라방 도 보건 당국 내에 자리잡은 SCA의 사무소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서인지 매우 깔끔했습니다. 사무소가 도 보건 당국 내에 자리잡은 것만 봐도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요. 산파답게 넉넉한 몸집을 가진 캐롤은 역시 푸근한 미소를 띠며 저희를 맞아 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프리젠테이션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서로간의 소개 후 캐롤의 사업 소개를 듣기 시작했지요.  

캐롤의 설명을 들으면서 저는 부지런히 SCA의 사업 및 저희 WHO/재단 사업과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크게 다른 점은 SCA는 포괄적인 일차 보건 의료 강화 사업을 하고 있고 저희는 모자 보건 사업을 통한 보건 의료 체계 강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차 보건 의료 사업은 대상군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역 내의 모든 사람이 기본 보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반면에 저희가 하는 모자 보건 사업은 대상군이 여성과 아동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라오스의 모성 및 아동 사망률이 높고 모자 보건 관련  MDG 달성이 긴급한 사안인 만큼 SCA 사업의 주대상군도 여성과 아동이라고 하는군요.

또한 SCA는 프리젠테이션 내내 지역 사회 식수 및 화장실 건설이 중요하고 식수, 위생 개선에 대한 노력이 병행되어야지만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역 사회의 식수, 위생은 SCA의 일차 보건 의료 사업의 한 사안으로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저희의 모자 보건 사업은 WHO내의 환경 보건 부서의 도움을 받아 재단 사업지 지역의 보건소 및 군 병원의 식수, 위생 개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재단에서 연간 5억원의 규모로 WHO내의 환경 보건 부서를 지원하기로 한 덕택이지요.

이 밖에 사업 내용의 세부로 들어가면 다른 점들이 몇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사업이 지역 사회 동원 및 간단한 산전, 산후, 분만 진찰을 위해 마을 건강 요원들의 훈련에 노력을 경주하는 반면에 SCA는 마을에서 전래로 일하던 전통 마을 산파들을 훈련시켜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마을 건강 요원들의 성비는 전체적으로 남녀가 반반 정도이고 일부에서는 전통 산파들이 건강 요원으로 일하기도 합니다. 본인이 산파인 캐롤은 전통 마을 산파들의 마을 내에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며 모자 보건의 중요한 일꾼들이라고 강조를 하더군요. 반면 이전에 전통 마을 산파들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던 WHO에서는 교육 수준이 낮은 전통 마을 산파들의 잘못된 믿음 체계를 바꾸기 힘든데다가 효과가 적기 때문에 포기했고 때문에 저희 사업지에서는 현재 이 인력 자원을 활용하지 않고 있죠.

또 사람들이 보건소나 병원에 오기 힘들기 때문에 마을 방문 진료를 하게 되는데 SCA는 일 년에 두 번 마을 방문 진료를 하고 연간 네 번, 보건소에서 이틀간 ‘건강의 날’ 행사를 하면서 건강 진료까지 같이 하는데 군 병원 인력들을 많이 활용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저희 사업지에서는 일 년에 네 번 마을 방문 진료를 하는데 보건소 및 군 병원 인력들을 골고루 활용하고 1-2개월마다 있는 보건소 미팅 때 마을 건강 요원들로부터 자료 수집을 하고 보건 훈련을 시켜 이들이 마을에 돌아가서 활동하게 시킨다는 점이 다르고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군 보건 당국의 역량 강화를 강조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훈련 및 지도에 촛점을 맞추고  병원 및 보건소의 시설 및 진료 역량 강화, 마을의 가용 인력 자원을 활용해서 보건 교육 및 기초 진찰을 시킨다는 점 등 큰 사업의 틀은 흡사했습니다.

SCA는 처음에는 일개 군을 선택해서 4년간 시범 사업을 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사업지 군 갯수를 늘려가면서 장기적으로 사업을 했으며 비정부 기구들이 흔히 일하는 형식대로 중앙 보건부와 큰 연관 없이 도/군 단위 보건 당국과 직접 일을 시작했습니다. SCA가 보여 준 결과를 보면 대개는 3-4년이 지나면서 중요한 보건 지표들을 대부분 달성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설 이용율이 늘고, 식수, 위생 시설에 대한 접근도가 늘고 그러면서 모성 사망률이나 아동 사망률도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 지표들을 보면 사업을 한 지 3년 내에 MDG 목표의 대부분을 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결과를 논하려면 이들 사업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지만서도요.

얼마 전에 저희 팀의 모자 보건 시범 사업지인 사라반 도의 콩세돈 군에서 사업 시작 12개월만에 전년도 대비 모자 보건 서비스를 위한 병원 및 보건소 시설 이용율이 눈이 띄게 증가한 통계 분석이 나와 여러 개발 파트너들 및 보건부 고위 공무원들과 앞에서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단기간에도 성과가 보이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 기존의 충족시켜 주지 못한 의료적 요구(unmet need) 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도 재단 사업지인 10개 군의 모든 사업 아이템들은 시범 사업지의 사업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희망을 갖게 됩니다.

캐롤은 프리젠테이션 내내 저는 모든 것들이 흥미로왔습니다. 사실 지난 4월에 처음 라오스에 파견된 후 읽었던 많은 기초 자료들 중에 SCA의 사업 모델 리플렛이 있었고, 그 때만 해도 사업을 아직 구체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때라 많은 내용들이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를 때였습니다. 그러나 사업 시작이 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지방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얻은 문제 의식들이 많아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이들에게서 얻는 정보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척 소중하답니다. 이들이 마주쳤던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하는 과정들을 잘 알게 되면 그 경험을 딛고 설 수 있으니까요. 거꾸로 앞으로 저희의 사업이 남들의 귀감이 되고 이들에게 경험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케롤은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저희가 다음 날 SCA 사업지인 난 군 보건 당국 및 난 군 병원, 난 군 내에 속해 있는 남팍 보건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SCA의 직원인 닥터 빌라통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필리핀 및 일본에서 유학을 한 닥터 빌라통은 영어가 유창한 인재로 라오스에서는 이런 인재들이 정부나 사기업, 혹은 유엔 및 비정부 기구들의 요직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받는 월급이 사적 분야나 외국 원조 기구들에서 받는 월급보다 적기 때문에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이 이들 인재들에게는 그렇게 매력적인 직업은 아닌 게 현실입니다.

미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저희는 라오스 내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을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야시장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서는데 거리 한복판에 한 200미터 구간에서 상인들이 좌판을 벌이기 때문에 이 지역은 야시장이 서는 동안은 차나 오토바이들이 다닐 수 없게 된답니다. 이런 노점상들도 있는 반면 거리 양쪽에는 각종 가게들과, 바,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고요. 루앙프라방 고유의 패턴이 수놓아진 라오스 전통 직물들과 여성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각종 돌과 은으로 만들어진 토속적인 액세서리들이 대부분이며 가끔씩 새를 잡는 총이나 나무로 만든 전통 악기들을 파는 데도 눈에 띄었습니다. 루앙프라방은 과거 14세기에 란 상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라오스가 베트남 전쟁의 몸살을 겪고 1975년에 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었을 때까지 라오스의 왕이 머물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찰이나 왕궁 등 과거의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을 뿐더러 메콩강을 끼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실제로 비엔티안과는 아주 다른 고도시의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야시장 초입 골목 어귀에서 저희를 유혹한 통닭과 달콤한 케잌들을 따라 먹자 골목으로 들어갔고 1500원 짜리 부페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톡쏘는 맛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라오 맥주를 시키고 각자 접시에 담아 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죠. 저희 일행은 저와 제 업무 여행에 관광객으로 따라오신 제 아버지, 재단 홍보팀장님이신 정경희 팀장님, 부천 순천향 병원 해외 사업팀에서 10년째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유덕준 팀장님, 카톨릭 성모 병원의 해외 사업팀의 일원으로 4년째 몽고 사업을 하고 있는 승연씨, 한국 세이브 더 칠드런 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세화 씨였답니다.  

다른 단체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과 사업 이야기들을 서로 공유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죠. 각자가 일하는 나라가 다르고 사업의 내용도 다르지만 한 가지 비슷한 점들이라면 사업을 하면서 겪게 되는 고충과 고민들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시 저의 고민이기도 한데 어떻게 문화와 사회 체계가 다른 현지 사람들과 같이 사업을 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 점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들이 무척 많더군요. 캄보디아 사정, 몽고 사정, 라오스 사정….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회에서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동시에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없으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탈선을 하기 쉽지요. 때문에 현지 사람들의 현실, 사고 방식, 사회를 잘 이해하고 이를 역지사지해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개선점이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이것이 시행되었는지 확인하고 잘 되었으면 칭찬과 적절한 보상을 통해 동기 부여나 희망을 주고 그래야 하는데.........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해외 원조 경험이 많아 이미 요령을 터득한 사람이나 한 나라에 비교적 장기간 체류하면서 그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잘 이해한 사람들이 아무래도 이런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저희 일행은 닥터 빌라통과 함께 SCA 사업지를 보러 떠났습니다. 차로 한 3시간 정도를 달려 난 군 보건 당국 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연락을 받아서인지 군 보건 당국장이 역시 난 군의 지난 3년 동안의 사업 성과를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보여 주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전날 캐롤이 설명해 준 SCA 사업 모델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었으며 여러 보건 지표들의 향상이 각종 그래프 및 도표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이후 저희는 군 보건 당국과 같은 정원 내에 있는 군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이 난 군 병원이 다른 군 병원들과 다른 점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 중에서 모자 보건 서비스를, KOICA에서 지원해서 건립한 모자 보건 센터 건물로 별도로 분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모자 보건 센터는 군 병원 옆에 나란히 서 있었는데 산전 진찰실, 분만실, 가족 계획실 등이 있고 공간 가운데 대기실을 두고 있습니다. 새 건물이라 모든 것이 깨끗하고 보기 좋았는데 실제 사람들의 이용율은 그리 높지 않아 현재 하루 평균 4-5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하더군요.

이 모자 보건 센터에 대해 나중에 저희 모자 보건 팀장인 닥터 리유에게 말씀드렸더니 지역 사회의 시설 이용율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는 초기 투자 비용이 높은 모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지역 사회 사람들에게 병원 시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추후 사람들이 오게끔 유도하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하고요. 앞으로 이 모자 보건 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눈여겨 볼 예정입니다.

군 병원 방문을 마치고 저희는 다시 루앙프라방 수도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남팍 보건소를 찾았습니다. 남팍 보건소는 앞에는 조그만 개울물이 흐르고 뒤로는 언덕이 있는 배산 임수의 적절한 지형 속에 놓여 있는 새 건물이었습니다. 옆에는 이전의 낡은 보건소 건물이 동그라니 놓여 있었는데 현재는 모든 것을 새 건물로 옮기고 빈 건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보건소 직원은 3명으로 이 중 한 명은 무보수의 자원 봉사 인력으로 약국 업무를 맡아 보고 있더군요.

특이하게도 보건소 직원 중 한 명은 라오스 정부에서 90년대 후반에 몇 년간 운용한 조산사 양성 프로그램 중에 양성된 전국에 몇 안 되는 전문 산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전문 산파가 있게 되면 분만 술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문제가 있을 때 바로 병원으로 전원시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할까요. 현재 라오스 정부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조산사 양성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했으며 올해 처음으로 140여 명의 조산사가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이것과는 별도로 현 보건소 직원들에게 간단한 산전 진찰과 분만 보조, 산후 진찰 등을 가르쳐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단기 훈련 과정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건소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깨끗하게 잘 정리된 기자재들을 둘러 보고 저희는 보건소를 떠났습니다.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보건소 중 모델이 될 만한 곳을 발굴한 뒤 이보다 성과가 느린 보건소 직원에게 견학을 시킨다던가 반대로 모델 보건소 직원을  성과가 느린 보건소로 불러 경험을 전수하게 하는 방법이 인센티브 차원에서 고려될 것입니다.

이번 방문 여행은 일행분들에게도 20년 사업 경험을 가진 모델 사업을 둘러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것이었고 이제 막 모자 보건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WHO/재단 입장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SCA뿐만 아니라 저희와 비슷하게 모자 보건 사업/일차 보건 의효 사업을 하고 있는 룩셈부르크 정부의 양자 원조 기관이나 이태리 정부의 양자 원조 기관, JICA 등과도 앞으로 더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사업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희도 역사나 경험 면에서 훨씬 앞서 있는 다른 나라들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 아닐까요.

한국 내에서 해외 원조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비정부 기구들이나 한국 국제 협력단(KOICA) 및 한국 국제 보건 의료 재단(KOFIH) 들이 서로의 활동들을 공유하고 비교하고 그래서 서로에게서 얻어 갈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서로의 어깨 위에 서는 것이 한국의 해외 개발 원조의 키를 키우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