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OCIATION OF PHYSICIANS FOR HUM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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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의협][홍종원] 희귀질환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작성자 : 관리자 2020.03.21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② 듣는 존재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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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울증 약 좀 처방해주세요.”

 

 

은진(가명)님은 은행 콜센터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예술대학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지만 알바로 시작했던 콜센터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행복한 삶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다. 다른 원인 없이 몸에 힘이 점점 빠져 걷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약해진 근육 탓에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휠체어에서 생활한다. 희귀 난치 질환인 근이영양증의 한 종류로 그동안 정확한 진단명도 찾지 못하다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최근에야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대학병원에 가봤자 큰 도움이 안 돼요. 진단명을 말해줘도 제가 알 수도 없고, 희망이 없어요. 검사비만 매번 몇십만원씩 내요. 유전자 치료는 비싸서 시도해볼 엄두가 안 나고요. 지난번에는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 절 보시더니 ‘김은진씨 정도면 괜찮네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황당하더라고요. 제가 겉보기에는 조금 괜찮아 보이긴 한데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해도 돼요?”

 

‘그 의사 선생님도 나름대로 위로의 말을 하려고 했을 거예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밖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실제로 그 대학병원의 의사가 진료한 수많은 환자 중 은진님이 비교적 경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진님은 때때로 지옥을 경험한다. 콜센터 일은 전화로 대화하는 일이라 할 만한데 한달에 두세차례 화장실에 제때 못 가 사무실 자리에서 실수를 하면 자존감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다. 근육이 무뎌져서 스스로 느끼지 못하거나 급한 상황에서 재빨리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실수하는 것이다. 동료 도움으로 화장실에 가긴 갔는데 곧 데리러 오겠다던 동료가 오지 않을 때 홀로 화장실에서 느끼는 자괴감은 얼마나 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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