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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인의협][임승관][김명희] 코로나19,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최선이다

작성자 : 관리자 2020.03.16

전문가들과 함께 매주 코로나19 리뷰를 진행한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오른쪽)과 임승관 안성병원장(왼쪽)이 고정 멤버다. 코로나19의 경험을 교훈으로 바꾸기 위한 자리다.

 

ⓒ시사IN 이명익

 

신천지, 마스크 5부제, 대구 한마음아파트, 서울백병원 폐쇄, 구로 콜센터…. 자고 나면 오늘의 코로나19 뉴스가 어제의 뉴스 위에 덮인다. 다 열어보자니 피로감이 쌓이고, 지나치자니 하나하나 다 중요한 함의들을 담은 사건이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서는 뉴스 소비 또한 긴 호흡이 필요하다. 휙휙 지나가는 뉴스와 정보 속에서 어떤 것들은 ‘기억 리스트’에 적어놓을 필요가 있다. 숨찬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나서는 그것들을 다시 꺼내보아야 한다. 조금 지긋지긋하더라도 언젠가는 머리를 맞대 코로나19의 경험을 교훈으로 바꿔야 한다.

그 긴 작업의 시작, 코로나19의 기억 리스트를 작성하는 차원에서 〈시사IN〉은 전문가들과 함께 매주 코로나19 리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른바 ‘주간 코로나19’ 회의이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고정 멤버를 자청했다. 〈시사IN〉에 ‘김명희의 건강정치노트’를 연재하고 있는 김 연구원은 보건의료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코로나19가 시민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읽어주기로 했다. 임 원장은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으로서 의료 현장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어나는 코로나19 위기와 대응을 전해줄 것이다. 매주 새로운 코로나19 이슈에 맞는 새로운 전문가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그렇게 매주 코로나19를 되짚고 또 다음 주를 각오하다 보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마음의 면역력이 조금씩이나마 키워질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가지고, 3월11일 저녁 서울 사당동 시민건강연구소 회의실에서 첫 ‘주간 코로나19’ 회의를 진행했다.

 

ⓒ시사IN 이명익3월1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텅 빈 거리를 몇몇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한 주 일상은 어땠나?

임승관:‘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라는 보건학적 용어가 현실로 구현된 모습을 목격했다. 지난 주말 복합 쇼핑몰에 영화를 보러 갔다. 한 달 전쯤만 해도 인파로 북적이던 그곳이 텅텅 비었더라. 앉아서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 시간이 무슨 의미일까. 사회적 거리두기, 스탠드 스틸(Stand still) 전략을 통해 우리가 시간과 기회를 얻은 거라면, 이것은 혹시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방역 작전을 짜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닐 텐데. 모든 일상 활동이 정지됐다면 피해는 분명 건물주나 현금 자산가들에게 돌아가진 않을 텐데. 어쩌면 가장 약자들일지 모를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기회와 시간을 관료, 전문가, 언론, 우리 사회가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일주일 동안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김명희:주말에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팔순 되신 친구 아버님이 갑자기 목요일부터 말이 어눌해졌다는 거다. 누가 봐도 뇌졸중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평소 천식 기운이 있어서 지금 병원에 가면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큰일 난다면서 병원을 안 갔다는 거다. 빨리 가셔야 한다고 설득해 응급실로 갔는데 이미 혈관이 많이 막혀서 앞으로 두세 달 재활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사례가 내 주변에만 있진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피할 수 있었던 다른 문제들로 인한 사망률도 높아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모든 아픈 사람과 그 가족들이 취할 수 있는 액션 플랜이 매우 모호한 상황이다. 만약 친구 아버님이 뇌졸중 증상이지만 검사해보니 코로나19도 양성이었다면? 응급실이 폐쇄되고 비난 댓글에도 시달렸을 것이다. 실제 이런 혼란 속에서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기고 입원한 환자로 인해 서울백병원이 폐쇄되는 사태 등도 벌어졌다.

임승관: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구·경북에서 환자가 늘어나고 의료체계가 마비된 후 자녀나 다른 가족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경기도 지역) 병상 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느 시점부터 분명히 대구 방문 이력 환자가 늘어났다. 이런 방어적 행위는 언론이 주목하기 전부터도 현실에서 감지가 되고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백병원 사례는 물론 대구 다녀왔냐는 질문에 거짓말을 한 점이 비난받지만, 여기에서도 개인의 행위에 너무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런 조건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대구·경북, 신천지 같은 어떤 위험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의료적·사회적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개인들이 알고 있다. 누구나 아픈 사람들은 그에 맞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백병원처럼 환자의 거짓말이 없는 상황에서도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3월5일부터 확진자가 발생한) 분당제생병원에 갔는데 입구에 ‘국민안심병원’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생각했다. ‘내일 국민안심병원도 뚫렸다는 기사가 나가겠구나.’ 어떻게 디자인해도 다 못 막는다. 누가 보건복지부 장관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증상이 특이하지도 않고, 모든 폐렴 환자가 호흡기 증상이 있고 얼마나 많은 외상 환자가 열이 날 텐데 그걸 어떻게 완전히 구분하나. 우리나라가 가진 의료 자원으로 일말의 확률을 지닌 감염자를 공간적으로 완벽히 분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낮춰야 한다.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불을 끄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기대를 낮출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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