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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의협][김창엽] 코로나19에 각자도생 대신 ‘공공보건의료 국가책임제’를

작성자 : 관리자 2020.03.07

무심코 지하철을 탔다가 아차 싶어 얼른 마스크를 꺼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똑같이 마스크를 쓴 광경에 나도 모르게 압도된 모양이다. 돌아보니 노약자석에 반쯤 기대 잠든, 아마도 노숙인일 것 같은 사람만 민얼굴. 마스크를 꺼내 쓴 뒤에야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방역당국이 말하는 마스크의 과학은 새삼스럽다. 의료기관 종사자, 호흡기 질환이 있는 환자, 대면 작업이 많은 실내 근무자 등을 빼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이면 또 모를까, 길거리를 걷거나 혼자 운전하는 사람, 더구나 집에서는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코로나19를 관통하는 완강한 원리

 

권위가 있을 법한 지침이 그저 잘 통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대란’이라니, 과학과 근거는 실패하는 중이다. 나는 마스크가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화된 것이 핵심 이유라 생각한다. 첫째로, 마스크는 ‘선량한 시민’임을 증명하는 눈에 보이는 표시이자 시민적 윤리의 증명이다. 그 효과는 둘째 치고 시민참여형 방역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불확실한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뭐든 해보기 마련인 사람에게는 삶의 ‘능력’을 포기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이 능력은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제안한 개념이다).

 

능력은 능력이되 각자도생의 노력, 그런 뜻에서 최소한의 소극적 능력이라는 점이 못내 걸린다.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권고를 따를 방법이 있을까. 그러지 못하니 마스크로 대신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리라. 이렇게 해서 개인은 능력을 실천하고 공동체는 확산 방지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런 사회적 결과조차 개인에게 의존하는 사태는 비극적이다.

 

마스크만 그럴까, 각자도생은 코로나19 사태를 관통하는 완강한 원리처럼 보인다. 사실상 강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진작 동의했고 이젠 내면화했다. 개인정보 문제는 온데간데없는 철저한 동선 추적과 과학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발본색원의 전수조사라는 강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모조리 금지, 봉쇄, 휴업, 폐쇄, 휴교하는 것이 유일한 안전이라는 믿음은 왜 생겼을까?

 

국가와 사회, 또는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가 바이러스와 감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한다면, 아니 그렇다고 믿을 수 있으면 누가 이렇게 힘든 인지 노동을 부담할까 싶다. 보건당국이 의심자는 잘 파악해서 조치했을 것이고, 위험한 장소는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서 이미 마무리를 했으리라 신뢰한다면? 완벽하게 자신을 격리하려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개학을 연기하고 공공기관을 닫는 것도 각자도생의 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이야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 전부터 확진자나 의심자가 생기면 각자 지역사회와 가정으로 흩어지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안전을 도모했으나 막상 그다음은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개인화의 함정이다. 타자를 가시권에서 지우면 우리는 더 안전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예방과 치료는 말할 것도 없이 생계조차 각자 책임으로 돌아간다. 차별, 배제, 책임 묻기의 경계선 또한 개인으로 접근한다.

 

 

지난달 27일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동하는 환자 이송 버스 안에서 한 의료진이 커튼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동하는 환자 이송 버스 안에서 한 의료진이 커튼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분투하는 개인에게 의존하는 사회

 

‘개인화’가 방역을 조직하는 중심 원리가 되었지만 그건 각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피난’하는 것은 공동체를 믿기 어려울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다. 미국처럼 코로나 확진 검사에 100만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가 마무리되는 대로 맞춤형 민간보험이 쏟아지고 많은 사람이 그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불안을 이기려 할 것이다.

 

감염병에 대응하는 사회적, 집단적 능력은 ‘공동재’(common goods)라는 것이 정설이다. 공중위생, 응급의료, 재난대응, 건강보장 등 다른 공동재도 그렇듯, 공유하는 기반이 약하면 사회적 재난조차 대응의 책임은 개인에게 분산된다. 공동체가 같이 투자하고 유지해야 할 공동재를 상당 부분 개인별 자산으로 바꿔놓은 체제, 그것이 감염병 유행에 반응하는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1535.html#csidx1e17e53b2299fc8a4e9c1ef5b7c6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