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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민창 칼럼]생활습관병과 웰빙

작성자 : 관리자 2004.07.30

최근 한국에는 웰빙 바람이 불고 있다. 먹을 것을 선택하는 것부터 거주환경에 이르기까지 가치의 척도는 웰빙이다. 이러한 바람은 의료계에도 불고있다. 금년부터 유독 '생활습관병'이라는 용어가 대한의사협회지를 비롯하여 의료계에 널리 애용되고 있다. 이 생활습관병의 개념은 웰빙의 개념과 그 근본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간, 질병의 발견과 치료에만 매달렸던 것과 비교한다면, 질병의 예방과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건강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Health is a complete state of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is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WHO 1946)"

과거의 한국의 의료가 질병이 없는 상태를 위한 것이었다면, 생활습관병의 개념은 신체적.정신적 안녕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생활습관의 교정을 통한 질병의 예방은 서구에서는 1970년대에 잠시 강조되었던 개념으로 주로 부유층에게서만 약간의 실효를 거뒀던 개념이다. 이것이 어떻게 첨단의학의 선두주자라 자부하는 한국에 21세기에 상륙하여 시중에 유통되는가? 이것을 우리 나라의 경제적 발전이 1970년대의 서구 수준에 도달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생계보다는 삶의 질 쪽으로 넘어갔다고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원인은 명확히 밝힐 수는 없더라도 효과는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개념은 부유층을 즐겁게 해주는 개념이다. 즉, 이미 사회적 안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신체적.정신적 안녕에도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준다. 이러한 돈독한 관계가 환자의 건강증진으로 이어지고, 결국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일이 줄어들어야 이 개념은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의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보람과 자유시간? 시장적 의료시스템은 이러한 결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풍요보다는 소박한 여유를 강조하는 개념인 웰빙이 한국 사회에서는 부유층의 과소비와 사치로 귀결되듯, 좋은 환자-의사관계가 현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의료인의 소득으로 접목될 것이다. 최근, '사치성 의료, 혹은, 의료과소비'라 명명할 만한 것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또, 이와는 다른 문제도 있다. 생활습관의 교정이 부유층에게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그리 간단치 못하다는 사실이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과 가사노동에 시간을 쪼개고 돈을 쪼개며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생활습관을 조절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이 개념이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생활습관병이나 웰빙의 개념이 건강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사회적 요인을 은폐시킬 수도 있고, 건강치 못한 사람을 무능하거나 개으르거나 의지가 빈약한 사람으로 몰아갈 수도 있고, 문제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의해 그들의 소외감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개념을 폐기하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자는 것이다. 문제는 생활습관의 교정이 아니라 이러한 생활습관을 유도해 내는 자본과 권력의 욕망을 밝히는 것이며, 중요한 지식이 돈벌이를 위해 왜곡되는 현실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WHO를 인용해 보자.

"The fundamental conditions and resources for health are peace, shelter, education, food, a viable income, a stable eco-system, sustainable resources, social justice and equity. Improvement in health requires a secure foundation in these basic requirements.(WHO, 1986)"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의 해결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환경이 좀 더 안전하고 덜 치열해야 한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희생해야만 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수가 없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의사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거나, 오직 의사들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요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기'이며 모든 영역들이 서로 '연결-접속하기'이다.  WHO에서 세계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에게 호소하는 듯한 문구가 있다.

"Good health is a major resource for social, economic and personal development and an important dimension of quality of life. Political, economic, social, cultural, environmental, behavioral and biological factors can all favour health or be harmful to it.(WHO, 1986)"

나는 이것을 내 식으로 다시 쓰고 싶다. "인간이 건강해야 사회든, 정치든, 경제든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에  해로운 짓만 골라서 하다가는 세계인들 모두가 건강하지 못하게 될 뿐만이 아니라 당신들 수입이나 권력의 기반 역시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