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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겨레 왜냐면] 피와 열화우라늄으로 얼룩진 이라크

작성자 : 관리자 2004.06.24

 

[한겨레 왜냐면] 2004.6.24.

피와 열화우라늄으로 얼룩진 이라크

이라크 무장저항세력의 하나가 우리 정부의 추가파병 결정 직후 한국인 김선일씨를 납치, 살해하여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김선일씨의 이번 사건을 보며 안타까움에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을 보고 또 하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이 글을 올린다.
필자는 베트남 파병 숙부가 고엽제 피해로 30년이 넘게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다이옥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이라크 파병 논의를 보면, 당시와 같은 논리로 파병을 주장하고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독성에 대해 숨겨온 미국 정부의 문제도 있지만, 건강상의 위해에 대하여 무지한 우리 의학자들의 도의적 책임도 있다. 그때는 몰랐었다고 자위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다이옥신보다도 더 큰 위해 물질인 열화우라늄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화우라늄은 천연우라늄에서 핵연료로 사용되는 농축우라늄을 분리하고 남은 물질을 말한다. 천연우라늄 분리과정에서 우라늄 중 핵분열하는 동위원소인 우라늄235가 분리된다. 남은 물질은 우라늄238이 99.8%인데, 이것을 열화우라늄이라고 부른다. ‘열화(depleted)’라는 말은 ‘위험하지 않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폐기물질을 가장 손쉽게 버리는 방법으로 치명적인 무기를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의 다이옥신으로 인한 참전군인들의
고엽제 피해를 상기해야 한다. 이라크에선 다이옥신보다도 더 위험한
열화우라늄에 노출될 수 있다. 의무, 공병부대를 당장 철수하고, 파병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


열화우라늄이 대규모로 사용된 최초의 전쟁은 1991년 걸프전쟁이며, 그 후 1995년 보스니아 전쟁과 1999년 발칸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열화우라늄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인체에 유입되는데, 이 먼지가루는 주변에 있거나, 바람이 부는 방향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흡기를 통하여 유입될 수 있다. 또, 나중에 부서진 전차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근처에 있던 부상자들도 이 먼지를 흡입할 수 있다.

핵연료로 우라늄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우라늄이 체내에 유입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되어 있다. 우라늄이 혈액으로 흡수되면, 대부분은 빠른 시간 내에 소변으로 배출된다. 따라서, 과거에 우라늄에 노출된 사람의 경우, 소변검사로 우라늄 중독 여부를 검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는 수년 동안 폐에 남아있게 된다. 2001년과 2002년 출판된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 Working Group) 자료에서는 폐암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고, 필자가 여러 논문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신장을 비롯하여 간, 혈액계, 호흡기, 심장에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우라늄은 또한 디엔에이(DNA)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전학적 이상과 기형,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

의학적인 건강 위해뿐만이 아니다. 열화우라늄은 주변을 오염시킨다. 열화우라늄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고, 환경을 더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문제를 그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주게 된다. 오염된 이라크 땅을 그들에게 속히 원래대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민간인은 물론이고 무장한 군인도 대부분 열화우라늄 오염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바스라 지역에 파병되어 있는 의무, 공병부대도 당장 철수하고, 파병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 1991년 걸프전에서 가장 많은 열화우라늄탄이 사용되었던 이라크 바스라 지역에서는 암사망 사례가 지난 1988년 34명에서 2001년 현재 603명으로 급증했고, 바스라에 있는 사담훈육병원의 자와드 알리 박사도 “바스라 지역에서의 기형아 출산율이 1989년 10만명당 11명에서 2001년 현재 116명으로 급증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라크 파병, 이래도 해야 하는가 아무 것도 모르고 베트남에 파병되어 고엽제로 고생하는 우리 삼촌, 아버지들과 이라크 파병을 준비하고 또 현재 이라크에 가 있는 우리 조카들, 아들딸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며, 답답한 마음 억누를 길이 없다.

유고 속담에 “옆의 사람이 뜨거운 국을 먹을 때 혀가 데인다는 것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하였다. 나는 충고한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지난 베트남 전쟁의 다이옥신으로 인한 참전군인들의 고엽제 건강피해 상황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시에도, 고엽제 피해에 대해서 숨겨왔다. 미국 정부는 전쟁에서 당장 손을 떼어야 한다. 군인들을 철수하고,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 하나의 생명은 우주보다도 더 귀하다. 다이옥신이나 열화우라늄으로 피해입는 생명이나, 총칼에 희생된 민간인의 생명 모두 귀중하다. 있어서는 안될 전쟁이지만, 당장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명분없는 전쟁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건강영향에 대한 과학적 진실이 더욱더 밝혀질 것이다. 당장 철수하고, 파병을 취소하는 것이 역사의 중대한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한 길일 것이다.

홍승권/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