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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겨레 왜냐면] 중국여성 노동자의 자살이 산재인 이유

작성자 : 관리자 2004.06.19

[한겨레 6/10]


중국여성 노동자의 자살이 산재인 이유


김종민/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




34살의 중국 여성 이주 노동자가, 주간 12시간, 야간 13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귀국도 하지 못하게 되자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그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지난 4월27일, 대구에서 34살의 중국 여성 이주 노동자가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삶을 마감했다.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러나 회사 사장님이 돈을 주지 않습니다. 노동부에 가서도 해결 못했어요. 외국인도 사람입니다. 왜 일을 했는데 사장은 돈을 안 주는 건가요. 나는 돈이 없어 집에 못 갑니다. 방법이 없어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정유홍. 중국 랴오닝 출신으로 중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며 밝고 맑게 생활해 오던 그녀는, ‘코리안드림’을 가지고 한국 땅을 밟은 지 4년 만에 위와 같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그녀의 사후 이루어진 조사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의 비인간적인 노동과 삶의 조건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그녀는 2003년 11월, 기계자수를 주로 하는 대구지역의 한 가내 수공업체에 취직하여, 주간에는 12시간, 야간에는 13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월 임금은 80만원, 그나마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자, 고인은 올해 1월 회사를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회사 사장의 협박과 만류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진 것이다.
고인은 한국 체류기간이 5년 미만으로 합법 등록 상태였기에, 퇴직과 출국이 자유로웠음에도 회사 사장은 협박과 만류로 고인의 자유를 억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받았던 지방 노동청과 고용안정센터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고인의 죽음에 일조하였다.

이에 대구지역 시민사회 노동단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고, 고인의 자살을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판단하여 대구지역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는 지난달 29일 산재 불승인 통보를 해 왔다. 공단 지역본부는 이유로 다음을 언급하였다. 1)망인의 자살의 직접적 이유가 체불임금 때문이므로 이를 산재보험법상의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없다. 2)자살이 산재보상이 되기 위해서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등 정신장해가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망인의 경우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 않다.

그러나 첫째, 고인의 자살은 명백히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 고인은 물론 임금 체불과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 이 사회 전반에 대하여 실망하였지만, 앞서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량, 사업주의 협박 등에 따른 스트레스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심각한 정신적 우울과 불안 상태에 있었다. 이는 2개월 만에 체중이 17㎏이나 빠졌다는 주위 진술을 미루어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인의 자살은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량, 사장의 협박 등에 따른 업무상 스트레스에 더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이주 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자살 전의 고인의 정신과적 상태에 대한 감정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상황의 전체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지침에만 충실하려는 행위다. 오늘의 현실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더라도 어떻게 정신과에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근로복지공단 대구지역본부는 고인의 산재보상 신청 건을 재심의해야 한다. 이 땅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일상적인 냉대와 차별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인은 사실 이 땅의 제도가, 사회의 구조가 살인한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녀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