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OCIATION OF PHYSICIANS FOR HUMANISM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라는 이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천’이다.

초점

초점

공유하기

[칼럼] [김진국의 의학마당 오동나무] 17대 총선과 대구 경북의 미래

작성자 : 관리자 2004.06.19

<참언론 참소리 174> 대구 경북의 미래는 언론개혁에 달려있다.


김진국 (대구적십자병원 신경과장)



지난 3월 12일, 193명의 국회의원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다음 날 매일신문(2004년 3월 13일)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법적으로는 "기사회생의 대운을 맞을 것인지는 미지수이나 일단 정치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뒤 매일신문의 판단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분명 "기사회생"한 것 같고, 다만 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만 되찾아 오는 절차만 남은 듯하다. 조금씩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청와대의 움직임에 대해 지금 특별히 제동을 거는 정치세력이나 언론도 없다.

반면에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정치인들은 완전히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 같고, 살아 생전에 "기사회생의 대운"을 다시 맞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때 의회 다수당의 힘만을 믿고 국민은 눈에 뵈지도 않는 듯 기세등등하던 한나라당도 지금 한껏 쪼그린 자세로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며 오랜 세월 부패에 찌들은 얼굴에 분칠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숨통까지 틀어쥔 채 사생결단의 기세로 헌정질서를 유린하던 한나라당이 느닷없이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부정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치열한 저항과 분노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과 청산없는 한나라당식 상생의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까지 지역 맹주를 중심으로 좁은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분할해 온 지역할거주의는 더 이상 자리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변화는 이번 총선 결과와 그로 말미암은 정치환경의 변화만을 살펴보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대구·경북 지역만 지난 시절의 향수에 취해 지역주의에 경도된 투표성향을 보임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고 있고, 나아가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할 부패·수구 정당을 다시 부활시켜 놓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거 행적에 대한 일말의 반성과 사과도 없이 지금 '상생'을 부르짖을 수 있는 뻔뻔스러움도 그들은 경상도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선거 결과를 불러온 경상도의 힘이 대구·경북지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 시절의 허상을 좇아 끝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집단에게 '미래'란 말은 너무 낯설고 두려운 말일 터이니까.....

선거가 끝난 뒤 온 힘을 바쳐 지지하던 정당이 "싹쓸이"를 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음에도 지금 대구의 분위기는 축제판이 아니라 선거 전과 하나 다를 바 없이 침울하기만 하다. 과거의 향수와 근거없는 피해의식에 발목잡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는 대구 경북의 침울한 현실에 지역언론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일까?

17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가 완료된 4월 16일, 대구지역에 배포된 매일신문의 1면 머릿기사는 "한나라 대구·경북 석권" 이었다. 이번 선거를 대구·경북 지역의 시·도의원 선거로 착각하지 않은 이상은 총선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나라 대구·경북 석권"이란 제목을 1면 머릿기사로 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1당 독재가 끝도 없이 이어져 가는 이 지역에서 또 다시 한나라당이 석권했다 한들 지역의 미래에 어떤 의미있는 변화가 생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싹쓸이에 쌍수를 들며 환호하던 매일신문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대신 선거운동을 포기한 채 밥을 굶거나 맨발로 절뚝거리며 "제발 싹쓸이만 막아" 달라고 구걸하듯 울부짖던 여당 후보자들에게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려는 것인지 매일신문은 대구·경북 지역의 한나라당 싹쓸이를 변명하는 기사로 연일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매일신문 2004년 4월 16일 야고부 『싹쓸이에 대한 변명』, 4월 19일 『대구·경북 한나라 싹쓸이면 호남·충청선 열린우리당 싹쓸이』). 매일신문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대구·경북의 한나라당 싹쓸이와 호남·충청의 열린우리당 싹쓸이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여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야당에게 실어줌으로써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이 정치권력의 균형추 역할(매일신문 4월 21일, 『대구 경북 표심 과연 지역주의였나?』- '정치권력의 균형추 역할' )을 했다는 평가 또한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공치사에 불과한 말이고,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권력의 불균형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눈을 감아 온 매일신문만이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농담이다.

물론 "정치권력에 대한 균형추"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어닥치자 선거 기간 동안 '탄핵'이란 말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은 채 "거여견제론"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다짐대로 "정치권력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거여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박근혜 대표가 전국을 돌면서 호소하고 다닌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이런 발언은 결국 한나라당이 권력의 균형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과거의 때묻은 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는 고백을 한 셈이고, 내부 혁신을 하겠다고 온 국민 앞에 약속을 한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아무렇게나 툭툭 던지고는 책임도 지지 않고 잊어버려도 될 수준의 정치인들의 정치성 발언 정도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한나라당의 속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못한 듯 하다.

한나라당의 후견인 수준의 역할을 하던 조선일보는 선거가 끝난 며칠 뒤 한나라당에 대해서 "옛날 식으로 야당하면 끝장난다"며 "활로를 중앙"에서 찾으라는 강력한 주문을 했다(조선일보 4월 20일, 『옛날 식으로 야당하면 끝장, 좌에서 중도로 갈 듯』).

조선일보가 말하는 이 "중앙"은 정치노선에서 좌우 사이의 중앙이란 의미도 있겠지만, 한나라당이 가진 지역한계를 극복하고 영남에서 서울·경기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넓혀라 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 당선자 연찬회에서 박세일 의원은 "한나라당을 법률적으로 청산하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자는 주장을 했다(매일신문 2004년 4월 29일, 한나라 해
NewsLetter∥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5

체-재창당 격론). 한나라당 내부에서 스스로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표적은 과연 어디일까?

그 표적은 이재오 의원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일신문(2004년 5월 3일 4면)은 이재오 의원이 당선자 연찬회에서 한 발언에 대해 "수도권 앞으로, 영남은 뒤로"라는 제목 아래 "영남이 발끈"한다며 "위기 땐 손내밀더니" 라는 영남지역 의원들의 불만을 소상히 전달해 주고 있다. 하지만 내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한나라당 소속의 비영남권의원들과 원외 인사들의 솔직한 속내는 "수도권 앞으로 영남은 뒤로" 일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탄핵 역풍에 휘말려 다른 야당들처럼 몰락할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제해 준 것은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이긴 하지만, 정치환경이 급격하게 바뀜으로써 한나라당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대구·경북의 흔적을 지우거나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내부 힘겨루기가 어떻게 정리될 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한나라당 내 비영남권 의원들과 원외 인사들의 영남권 의원들에 대한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게다가 대구·경북 의원들은 지역정서에 안주하며 정치경력을 키워온 탓에 변화된 정치상황에서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할 지도 의문인 상황인데, 결국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시대가 변화함으로써 이런 저런 이유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힘든 정치인들에게 무턱대고 표를 몰아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대구·경북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대구·경북의 미래 또한 불투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구·경북의 지역정서가 한나라당에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지역 언론이 그런 지역정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변화된 시대환경에 걸맞는 새로운 의제를 설정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 또한 언론이 떠맡아야 할 책임일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고착된 채 지역사회 전체를 서서히 파멸로 몰아가는 왜곡된 지역정서에 대해 지역언론이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오히려 그런 지역정서에 기대거나 부추김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으며 사세확장을 노린다면 이런 언론을 어떻게 사회의 공기라 평가할 수 있을까?

매일신문(2004년 5월 4일, 3면)은 열린우리당 지도부 구성과 관련된 논의과정에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에 대한 기사를 내보면서 "열린우리당은 과연 전국정당을 지향하고 있나"라는 비난이 섞인 듯한 부제와 함께 "영남몰락 호남일색"으로 기사제목을 뽑았다. 정당의 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정활동일 것이니 정당의 중심인물은 원내인사가 요직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사력을 다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 소속의 정치지망생들을 철저히 외면했고, 그래서 영남지역의 열린우리당 소속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원외인사들이니 만큼 열린우리당의 요직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상식선에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영남지역의 인사가 발탁이 된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배려' 차원의 소수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런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시커멓게 "영남몰락 호남일색"으로 보도하는 매일신문의 저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또 다시 지역 유권자의 지역정서를 자극하면서 지역 유권자들로 하여 다른 지역의 정치세력들에게 혐오감을 가지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매일신문이 그토록 편애하는 한나라당은 전국정당인가? 대선과 총선 때마다 경상도 유권자의 수만 믿고 호남고립 정책을 펴 온 한나라당이 전국정당인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호남지역에 아예 공천조차 하지 않은 지역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매일신문은 알고 있는가? 경상도의 표심에 기대어 겨우 명줄을 유지한 한나라당이 전국정당인가?

지난 해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대참사(지하철화재)가 대구에서 일어났을 때 매일신문의 정치부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대구 사람들이 국가의 축"을 세우던 시절을 회고하며 그 엄청난 재앙이 모두 정권을 빼앗긴 탓이라며 통곡하는 듯한 글을 썼다(매일신문 2003년 2월 21일『대구의 내일』).

군부독재가 30여년 가까이 계속되는 동안 만약 대구·경북이 풍요로울 수 있었고, "대구 사람들이 국가의 축"을 세울 수 있었다면 그것은 국민으로부터 부도덕하게 권력을 탈취한 독재자가 배려한 특권과 특혜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터이다.

시대가 변하고 또 변했음에도 아직 정권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대구· 경북의 지배층과 엘리트 그룹들....그들은 지역언론과 합세하여 지역주민 전체를 집단 피해 망상증 환자들로 몰아가고 있다.

정녕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국민들은 대구·경북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대구·경북 출신의 독재자들로부터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 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서 주권을 탈취하려는 어떤 음모도 이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고, 용납되지도 않는다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남긴 채 일상으로 돌아갔다.

진정으로 대구·경북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은 지난 날의 향수에 취해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 오겠다고 앙앙불락 할 것이 아니라, 독재권력의 특혜와 배려라는 치마폭에 쌓인 채 특권을 누려오다 자생력을 잃어버린 대구·경북의 초라한 모습을 되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대구·경북의 과거는 곱씹으며 즐겨야 할 향수가 아니라, 다시는 돌아올 수도 없고, 돌아와서도 안되고 오히려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할 구시대 문화의 한 축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대구·경북에서 온몸을 바쳐 지지했던 한나라당 내에서도 "영남은 뒤로" 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대구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대구·경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은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에게 끝없이 권력상실에 따른 피해의식을 주입시키면서 반사이익을 누리며, 끝없이 과거회귀를 부추기는 지역언론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집권 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제일 먼저 언론개혁을 정책과제로 내 놓았다. 그것이 다수당이 되었다는 객기에서 나온 허풍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역 언론의 개혁 없이는 대구·경북의 미래 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