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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라는 이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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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평화와 복지 실현을 위한 한반도 군축 선언

작성자 : 관리자 2004.07.26

 

정전협정 51주년, 한반도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한다!

2004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로 보내왔던 것이다. 우리는 정전체제 하에서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자원을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낭비되면서 심각한 인권유린과 생존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영향력을 가져와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처럼 정전체제는 한반도 주민과 공동체의 삶을 총체적으로 짓눌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의 종식은 아직도 기약이 없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도 부족하기만 한 현실이다.

정전협정 체결 51주년을 맞이한 한반도는 희망과 불안,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향한 노력은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비록 실천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 최초로 남북한 군장성들이 만나 서해상의 무력충돌 방지와 상호간의 선전 활동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희망과 기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고, 주한미군 재편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두 축으로 삼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새로운 위협을 잉태시켜 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한반도 주민들이 생존의 벼랑끝에서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군사비는 여전히 최우선적인 특혜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선택이 갖는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첨예한 군비경쟁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의 과오를 극복하고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냉전적 세계관과 막강한 군사력이 안보를 지켜준다는 '낡은 사고'에 갇혀 또 다시 불안한 21세기를 잉태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는 이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서, 조속한 평화협정의 체결과 군축을 통해 공고한 평화체제를 실현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점을 호소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울러 이와 같은 중대한 전환기에 한미동맹이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아래와 같이 10대 요구 사항을 발표한다.

< 10대 요구사항>

첫째,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하게 임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성실한 협상을 외면해왔다. 이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MD 등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고 공격적 군사전략을 채택하며 궁극적으로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국은 이제부터라도 군사적 일방주의를 버리고 상호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협상과 타협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은 한반도에 첨단무기 배치 계획을 중단하고 대북한 선제공격전략을 공식적으로 철회해야 한다.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군사력을 배치하면서 북한의 무장해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접근법이다. 미국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약소국가에 대한 전쟁위협 중단과 군축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용산기지 등 기존의 기지이전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에 따라 기지 역시 대폭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또한 동두천 등 미군 기지가 폐쇄되는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기지 폐쇄시 오염된 토지를 원상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군화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계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한민국의 헌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는 미국이 한국을 MD의 전초기지화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경계하며, 이러한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째, 협력적 자주국방을 조기에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군의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 낭비와 남북관계의 불안을 가져오는 군비증강 계획 대신에, '군사 주권'의 핵심 요소인 작전지휘권의 완전한 환수부터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비의 규모 역시 세계평균인 GDP 대비 2.5% 수준 이하로 축소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군 문민화·투명화·비리근절 등 전면적 군 개혁에 나서야 한다. 군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지역에서 남북 군간의 교신내용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게까지 왜곡해서 보고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성역화되어 있는 군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인 국방장관 기용을 포함한 군의 문민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지정되고 있는 군사기밀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자의적 적용을 막을 국가기밀기본법을 제정하여 군운영을 투명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방비 증액에 앞서 군 조달 시스템, 비효율적 군수산업 구조, 육군병력 위주의 비효율적 병력구조 등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일곱째, 남-북-미 3자는 즉각 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미 인류 역사상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무기와 병력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배치된 상황에서 더 많은 무기와 병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의 낭비와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뿐이다. 따라서 남-북-미 3자는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한반도에 배치되어 있는 병력과 무기를 대폭 감축하는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하고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특히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추가적인 예산 부담 없이도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고, 사병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홉째, 남북관계를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분단에서 통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대결형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 삭제, 헌법의 영토 조항 개헌, 남북교류협력법제의 개정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기존의 남북, 북미 평화협정이라는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실현가능하고 공고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어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의미와 함께,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무모한 군비경쟁을 중단시켜 군축을 실현시키고 조속히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04년을 반세기를 넘긴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아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동아시아의 공동안보 실현을 위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2004년 7월 26일

반전평화기독연대, 불교인권위원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여성단체연합, 전교조, 진보평론, 녹색평론,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전국빈민연합, 문화연대, 군축·평화를 위한 문예 행동단, 우리땅지키기 문화예술인연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주한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 민족화합운동연합, 사월혁명회, 통일연대, 대항지구화행동, 평화바닥, 평화네트워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 전쟁없는세상,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초록정치연대,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민중의료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장애인이동권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행동하는 의사회, 이라크 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이상 43개 단체)

<첨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비판

우리는 먼저 냉전과 정전체제의 유산인 한미동맹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 함께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적 쌍생아이다. 그리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정부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우선 부시 행정부의 주한미군 재편과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2003년 5월 14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명시된 것으로써,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총론 수준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재편을 추진하고 한국은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반세기를 넘긴 한미동맹이 기존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바꾸고 건전한 관계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과거의 낡은 관성은 거의 고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 실현, 그리고 동북아의 공동안보에 기여하는 방향이 아니라, 대규모의 군비증강에 기반을 둔 군사주의적 접근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강경책과 비타협주의, 그리고 북한 핵문제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반도 군사력의 급격한 변화는 더욱 심각한 불확실성을 잉태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유리하게 하는 방향으로 군사력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주한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병력수를 줄여나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약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한반도 인근에서 대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 특히 미국이 수원, 오산·평택, 군산, 광주 등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들여놓고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하는 것은 한반도를 미국의 MD 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스텔기 전폭기와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신형 미사일의 배치는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을 더욱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아울러 보수 언론과 야당에서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을 '안보공백'과 동일시하면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공백'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향후 한미동맹이 "지역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타지역에서의 미국의 부분별한 무력 사용이나 대중국 봉쇄 및 포위에 활용될 가능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국이 타지역에 대한 미국의 무력 개입의 중간기지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한국이 불필요한 외부의 무력 분쟁이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파병 결정은 이와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용산기지와 2사단을 비롯한 미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세계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특히 우리는 용산기지는 물론이고 2사단의 이전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용산기지는 한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한국이 부담하고, 2사단 이전은 미국이 요청했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반환되는 용산기지는 약 80만평인 반면에 평택에 새롭게 건설할 예정인 기지 부지는 이에 4배인 약 320만평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시킨 다음에 2사단을 합류시키려는 계획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용산기지는 2007년까지, 2사단은 1년 뒤인 2008년까지 '같은' 평택 기지로 이전시킬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용산기지보다 4배가 큰 기지를 건설해줘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지고, 미국은 확장된 평택 기지에 용산기지와 2사단을 통폐합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비용 부담은 거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다섯째, 우리는 미군 기지 이전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 정부가 동두천 등 미군을 상대로 해 생계를 유지해온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나, 평택지역으로 남한 미군기지의 통폐합을 추진함으로써 해당지역 주민들의 생존권과 평화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끝으로 우리는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과는 달리 협력적 자주국방은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의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군사적 종속을 고착화시키고 국민 복지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며 한반도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에도 역행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