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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소위 ‘실손청구 간소화’법은 진료기록 약탈법이자 개인 의료정보 민영화법이다.

작성자 : 관리자 2023.06.14

  

소위 실손청구 간소화법은 진료기록 약탈법이자 개인 의료정보 민영화법이다.

 

 

 

지난 516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안으로 불려온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전체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환자 편의증진으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수령하려면 개인진료정보를 전자적으로 전송해야만 하는, 사실상 보험사에 전자적 개인진료정보 전송을 하게 하는 진료기록 탈취 법안이다.

 

지금도 의료현장에는 부족한 건강보험 보장으로 진료비 부담에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 의료비 부담을 덜어보고자 민영보험에 전국민의 80%가 가입하고 그 보험료 총액은 공적 건강보험의 70%에 달하지만 정작 민영보험은 환자부담을 줄이는데 6%만 기여하는 것에서 보듯이 미미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험사들은 갖가지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 절박한 처지에 놓인 암, 중증질환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민영보험사 스스로가 부추긴 불필요한 상업적 비급여지출을 보험료 인상으로 보험가입자에게 전가하기 바쁘다. 손해율이 높다고 아우성이지만 지난해 민영보험사의 순이익은 전년대비 11%나 늘어 무려 9.2조원에 달한다.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고 민영보험사들의 횡포를 규제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민 고통을 덜어주어야 할 정부와 국회는 그 반대를 하기에 바쁘다. 보험회사들은 보험가입자들이 청구하지 못한 소액보험금이 2~3천억원이라며 청구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여론을 선동한다. 그러나 설령 소액진료비 청구의 일시적 편익은 증진된다 하더라도 고액진료비를 민영보험사에 청구해야 하는 환자의 불이익은 개인의료정보가 보험사에 축적되는 만큼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최근 국회토론회에서 한 환자단체 대표는 실손보험 간소화를 하면 보험사 '지급비율은 오를지 몰라도 고액보험금 몇 건만 거절하면 보험사는 오히려 큰 이익을 보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보험사의 횡포를 겪어본 환자들이 먼저 이 법의 폐해를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보험업 개정으로 전자형식으로 축적, 갱신되는 개인정보의 범위는 심지어 대통령령에 위임돼 어느 범위까지 넓혀질지 알 수도 없다.

 

특히 정부는 보험개발원이라는 보험사들이 만든 사적 조직을 정보중계기관으로 활용한다고 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의 자료는 평소 보험회사가 자신의 자료처럼 수시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 자료인데 이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었는가? 또 보험회사들은 전자형식으로 전송받은 자료가 청구를 위한 자료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보험료 산정, 보험료 지급거절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법적 조항이 있는가? 전혀 없다. 지금도 이미 청구자료는 보험사들이 서로 공유하고 보험가입거절이나 부담보 조치 등에 활용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보험료 청구 간소화라고 하지만 사실은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거절 등을 위한 개인정보 자동탈취법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보험회사들은 과거 법적으로 금지됐음에도 그들이 얻은 개인정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하는 일도 이미 저지른 바 있다. 정무위 국회의원들은 보험사들의 연합체인 보험개발원이 '공공적 기관'이라는 황당 주장과 함께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겨우 몇 년 전에 그 보험개발원은 보유한 15천 건의 개인정보를 현대자동차 고객정보와 두차례 결합한 것이 드러나기까지 했다. 삼성생명도 삼성카드와 2017년 양사 동시 가입한 240만여명의 개인정보를 13차례나 결합했다. 이미 실정이 이런데도 보험사로부터 개인정보를 분산하고 보호하며 기업들의 탐욕으로부터 보호하기는커녕, 보험사들에게 개인정보를 전자형식으로 축적을 허용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의 개인진료정보가 보험회사에서 청구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다른 자료와 결합되어 누구누구의 개인질병정보라고 유출돼 상품화된다면 이 사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개인정보 보호 해제는 환자-의사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의료정보의 특성상 민영보험사가 환자 정보를 전자정보로 전송받아 축적하게 되면 환자의 권익이 침해된다는 사실을 안다. 이를 의료인에 강제하는 것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의료윤리의 제1원칙에 위배된다.

 

이번 법안은 민영보험사의 소비자 편익 선동만 난무하고, 정작 시민과 환자 입장에서 제대로 된 위험과 불이익이 논의되는 사회적 공론화도 없었다. 도리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최종 성안된 법안도 없이 의결하지도 않은 채, 법안을 통과시킨 뒤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식으로 졸속 추진되었다. 팬데믹을 겪고도 공공의료 확충에는 그토록 더딘 국회와 정부가 민영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이토록 일사불란 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내용뿐 아니라 절차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 보험업법 개악 추진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다. 시민과 환자가 아니라 철저히 보험사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의 저지를 위해 환자단체 및 시민단체, 노동단체와 연대할 것이며 이를 추진한 정치인들에게도 개인진료정보 상품화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2023.6.14.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