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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서] [인의협]과학과 인권의 관점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를 폐지해야 합니다

작성자 : 관리자 2020.10.14


과학과 인권의 관점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를 폐지해야 합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 위헌법률심판(사건번호 2019헌가30)에 대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견서

 

 

1.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오늘(10/14)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이하 전패매개금지조항) 위헌법률심판에 대한 전문가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2. 전파매개금지조항은 지난 해 12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조항으로 법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같은 법 제25조에 따르면 이를 위반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있다. 전파매개금지조항은 HIV 감염인의 행동을 제약하고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조항으로, 감염인 당사자 단체 및 인권 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전파매개금지조항의 존속이 인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과학의 문제임을 밝히고 이를 비판하는 전문가 의견서를 작성했다.

 

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의견서에서 전파매개금지조항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1)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조항이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감염인의 행위를 규제하는 범죄화방식의 법률은 공중보건학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범죄화는 감염인이 안전한 성행동을 하도록 유도하지 못하며, 오히려 고위험 집단이 검사를 피하도록 하여 공중보건학적 조치를 무력화한다. 처벌 규정은 감염인과 보건의료 종사자와의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감염인이 의료 서비스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이 조항이 존재함으로써 감염인, 비감염인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2) 감염인 당사자를 불건강하게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감염인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건강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전파매개금지조항은 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며, 낙인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낙인으로 인하여 감염인들이 의료 서비스에서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3) 전파매개금지조항은 현대 의학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HIV/AIDS에 대해 막연히 공포를 가졌던 80년대와 달리 현재는 하루 한 알의 복용만으로도 감염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의학적 기술이 발전했다.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전에 비감염인이 예방적으로 약을 복용하여 감염 확률을 낮추는 프렙요법이 등장했으며, 노출 후에도 적절한 약물 복용을 통해 감염 확률을 미미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4) 현대 의학의 성취 중 하나는 ‘U=U’를 증명한 것이다. ‘U=U’미검출(Undetectable)은 감염불가(Untransmittable)’라는 뜻으로, 감염인이 치료를 받아 혈중 바이러스 양이 미검출 수준으로 낮아지면 콘돔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타인에게 HIV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주장이나 추측이 아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포함한 전 세계 102개국 1,000개 이상의 기관에서 인정하는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사법기관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감염인의 성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조치다.

(5) 세계적으로 HIV/AIDS 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국가들은 HIV 감염인을 특정하여 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엔에이즈계획의 2030년 달성 목표(HIV 감염인의 95%가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고, 그 중 95%가 치료를 시작하며, 치료 중인 사람의 95%의 혈중 바이러스 양을 미검출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내용)를 달성한 19개국 중 HIV 특별법으로 감염인을 처벌한 사례가 있는 국가는 아프리카 남부의 보츠와나가 유일하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1999HIV에 관한 별도의 법안을 폐지하고 현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감염증 환자에 대한 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일반 감염병과 동일한 수준에서 HIV/AIDS와 성병의 예방을 도모하고 있다.

 

4.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의견서에서 한국 사회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전문 학회가 강조하듯 HIV에 관한 법은 최선의 과학적, 의학적 근거를 반영해야 한다. 전파매개금지조항과 같은 처벌적 조치는 공중보건학적으로 이득이 없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로 입증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근거 기반의 공중보건학적 조치다. HIV/AIDS는 확실한 치료법과 예방법이 존재하므로 의료 접근성을 높여 쉽게 검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HIV 전파 예방에 동참하도록 하여 사회 전체에 가해지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 성노동자, 성소수자 등 HIV 감염 고위험 집단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해소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 중 하나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처벌이 아닌, 사회가 공중보건학적 책임을 다하여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5.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늘날 전파매개금지조항은 대단히 현재적인 문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인류는 에이즈 대유행을 맞닥뜨렸다. 세계 각국이 공포에 떨며 감염인을 통제, 관리,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현재까지의 과학적 연구는 그러한 법들이 효과가 없음을 밝혀주었다. 감염인을 범죄화하는 법은 인권에 반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도 배치된다. 인권과 과학을 동시에 존중함으로써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려고 노력해 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전파매개금지조항의 폐지를 촉구하는 바이다. .

 

 

 

2020. 10. 14.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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