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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논평] 환자를 의심하고 감시해야 하는 의사

작성자 : 관리자 2009.04.21

[논평] 환자를 의심하고 감시해야 하는 의사

- 백남순(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업국장)

최근 “일방적인 수급권 강탈” 문제로 용산구청이 다시 한번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09년부터 시행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복지부 지침 때문이다. 기존 복지부 지침은 “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3개월 이상의 치료 및 요양이 필요한 자”를 수급권자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변경된 지침에서는 “진단서 상 3개월 이상의 근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만” 수급권자로 인정하는 조항이 추가됐다. 실제 용산구청은 수급권자에게 아무런 사전통지 없이 급여 1종 187명을 급여 2종으로 강등시켰다. 정당한 철거민 투쟁을 ‘떼잡이’로 모욕했던 용산구청장, 1억원이 넘는 사회복지 예산을 횡령하고도 쉬쉬해온 용산구청, 이런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금번 용산구청과 복지부의 합동작전은 환자들은 물론이요 의사들에게마저 심각한 불편부당을 초래하고 있다.  

첫째 의료급여 환자들은 여전히 의료서비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낮은 보험적용 범위 및 각종 비급여 의료행위들로 인해, 의료급여 환자들은 중병에 걸려도 대형병원에 갈 엄두조차 못낸다. 또한 몇 번의 의료이용도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의료 급여 2종 환자들은 본인부담금이란 현실적인 장벽에 가로막혀 급여 1종 환자들에 비해 의료기관 방문 횟수나 이용도가 훨씬 낮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장기적인 의료관리가 필요한 경우조차 다른 환자군에 비해 치료포기 및 치료중단 사례가 훨씬 더 많은 것도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 의료이용 취약계층이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료급여 범위를 늘려도 모자랄 판에 기존 의료급여 대상자를 축소시키는 행위는 국가가 가진 최소한의 의무조차 방기하는 행위일 것이다.

둘째 변경된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의사는 ‘3개월 이상의 근로능력 유무’를 판정해야 하고 이를 반드시 진단서에 적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근로능력 유무를 판정하는 행위는 진료실에 방문한 환자를 대상으로 쉽게 판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의학적인 판단 외에도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환자의 실제 생활 전반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는 의사에게 근로능력 유무를 묻는다면, 의사들 태반이 답변을 거부할 것이다. 혹은 판단할 수 없음을 근거로 진단서 발부를 주저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혹시 의사를 속이고 있는 지 의심하고 끊임없이 환자를 감시해야 한다. 그야말로 환자와 의사간의 기본적인 관계마저 파탄으로 내모는 조치인 것이다.

셋째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의료급여 환자를 마치 범죄자나 도덕파탄자로 보는 복지부와 용산구청의 태도다. 앞서 언급했듯이 의료급여 환자는 낮은 보험보장성 및 비급여 행위들로 인해 대형병원 방문은 엄두도 못낸다. 중병에 걸려도 동네의원이나 공공병원 등에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몇몇 의료과다 이용 사례가 있지만 이는 극히 소수일 뿐으로 개별 관리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반면 양천구청 및 용산구청에서 착복하고 횡령한 복지관련 예산만 수억대에 이른다. 진정 의심하고 감시받아야 할 대상은 점점 늘고 있는 취약계층이 아니라 용산구청처럼 복지예산을 착복하고도 쉬쉬 해온 일선 지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