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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인의협][임승관,김명희]‘확진’도 무섭지만 ‘낙인’은 더 무서워

작성자 : 관리자 2020.05.22

코로나19는 우리가 모두 같은 재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은 전 세계 규모의 최초 사건이다. 동시에 차별, 낙인, 자유, 건강, 인권에 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시사IN 조남진‘주간 코로나19’ 대담에 참여한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왼쪽부터).

지난 석 달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시국에’ 신천지 종교 집회에 가서 예배를 본 중년 여성, 서울 자식 집에 올라온 대구·경북 지역 할머니, 제주도 맛집을 누빈 서울 강남 출신 해외 유학생, 클럽에서 춤춘 게이…. ‘딱 욕하기 좋은’ 정보들이 사방에 흘러넘쳤다. 정보의 출처는 ‘찌라시’도 가짜 뉴스도 유튜브도 아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였다. 방역 당국이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개인정보와 이동경로를 제공하면 언론은 적당히 살을 붙여 확진자의 며칠간 삶을 재구성했다. 확진자의 부주의나 거짓말 같은 소재가 뒷받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미움의 소재가 된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하게 타인을 비난하고 차별하고 혐오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전제 아래 합리화됐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는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 인권이 다소 제한될 수 있다.’ 감염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자 메시지는 이렇게 변형된다.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방역에 더 도움이 됩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논리나 그것을 참는 논리나 모두 한 가지였다. ‘방역을 위하여.’

그간 처음이고 또 급박해서 논의되고 합의되지 않은 질문들이 산적해 있다. 방역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가 알게 된 수많은 감염자들의 성별, 나이, 주거지, 직업, 동선, 그 외의 숱한 정보가 정말 우리의 건강과 안전에 대체 불가능한 효력을 발휘했을까? 십분 그렇다 치더라도, 그 명분 아래 개인의 여러 권리들이 지금처럼 제한되는 일이 적당하고 타당한가? 방역은 과연 코로나19 시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선, 절대 가치인가? 방역과 인권은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 남을 비난하고 싶을 때 멈추는 마음은 무엇 때문이어야 할까? 방역에 도움이 되니까? 그게 선하니까? 그 이상의 다른 언어가 혹시 필요하지는 않을까?

잠시 벌어지다 말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 질문들을 ‘주간 코로나19’ 아홉 번째 대담에서 풀어놓았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이 질문들을 함께 나눴다. 김승섭 교수는 해고노동자,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가 겪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학문의 언어로 세상에 발화시켜온 사회역학자다. 서보경 교수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의료인류학 관점으로 바라보고 공부해온 활동가 겸 연구자다. 3월부터 매주 〈시사IN〉 지면을 빛내온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5월18일 저녁 〈시사IN〉 편집국에 모여 3시간 동안 코로나19와 차별, 낙인, 자유, 건강,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9주간 달려온 ‘주간 코로나19’ 마지막 대담이다.

ⓒ시사IN 신선영대구 지역 코로나19 확산의 주요 거점으로 꼽힌 대명동의 신천지예수교회 다대오지성전 입구에 폐쇄 명령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한 주를 어떻게 보냈나?

임승관:오늘 대담 주제인 ‘차별’과 연관된 고민을 품고 지냈다. 이태원 집단감염과 관련해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와 경기도의 협의 자리도 있었다. 만나고 보니 서로의 목적이 같았다. 위험에 노출된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자는 것이었다. 인권침해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을 텐데, 그럴 때 비난하거나 방어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연결 통로를 만들고 사례를 빨리 공유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김명희:지난주 한국건강형평성학회의 학술대회 ‘혐오와 차별의 유행, 감염병의 정치학’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학계에 발을 들인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나도 온라인 학술대회가 처음이고, 20대 대학생도 처음이다. 코로나19는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같은 처음’을 겪게 한 세계 최초의 사건인 것 같다. 1918년 스페인 독감도 세계적으로 유행했지만 당시 독립운동하던 조선 사람들은 팬데믹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도 전 인류가 경험했다고 하지만 어떤 산골에서는 모를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모두 같은 재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은 전 세계 규모 최초의 기간 효과(period effect)를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연구자로 살아온 김승섭, 서보경 교수 두 분은 코로나19 이후 무엇을 보고 겪고 생각했나?

김승섭:역학자이고 의대를 졸업하긴 했지만 감염병 역학자가 아닌지라 처음에는 멀리 있으려고 했다. 긴박한 시기에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말을 보태는 게 조심스러워 조용히 공부하면서 뒤에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중국, 대구, 신천지, 성소수자로 이어지는 낙인의 발생이었다. 코로나19가 낙인·차별·건강이라는 내 연구 주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왔다. 또 하나는 감염되어 죽거나 굶어죽거나 두 선택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저소득층 노동자 등으로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이 국면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가 이분들이었다.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에 코로나19와 낙인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공개했다. 4월 초부터는 서울시 은평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진을 도왔다. 5월 초 이태원 집단감염 사건이 터졌다. 내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어떠한 낙인이나 차별 없이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익명 검사를 받았다. 서울시와 성소수자 단체가 만나는 자리에도 전문가로 참석했다. 행정 당국이 코로나19 관련해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공개 표명하더라도 그동안 성소수자에게 쌓인 낙인과 차별의 역사가 장벽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서울시에 조언했다. 굳건히 이 장벽을 감안하고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서보경:의료인류학자로서 HIV 연구와 동남아시아 보건 건강을 주로 연구해왔다. 올해 2월에도 라오스와 태국(타이)을 거치는 일정을 세팅해놓았었다. 라오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나서야 ‘연세대, 중국·동남아 다녀온 모든 학생 기숙사 격리’ 소식을 포털사이트 뉴스로 알게 됐다. 교직원에게는 그런 강제 규정이 없었지만 학교에 폐를 끼칠까 봐 귀국한 뒤 ‘비자발적 자가격리’를 2주간 했다. ‘연세대 교수 확진자, 동남아 출장 다녀와 거리 활보’ 이런 세간의 추문이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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