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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의협] [김윤] 입원 꼭 필요한 환자 10명 중 2명꼴, ‘중증’ 선별했더라면…

작성자 : 관리자 2020.02.29

[코로나19 비상] 시스템 부재가 부른 대구 환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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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 남양주소방서 구급대원들이 28일 내부를 비닐로 둘러싼 구급차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환자 이송을 위해 평소에도 감염보호복을 입고 근무한다. [연합뉴스]

병상이 없어 입원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하던 코로나19 환자가 사망했다. 중국 우한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구에서 일어난 일이다. 75세의 고령에 신장이식을 받은 고위험 환자라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병상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던 중 세상을 떴다.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 이상으로 늘면서 확진자 중 절반 이상이 병상이 없어 입원대기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환자가 더 늘어나면 13번째 사망환자 같은 사례가 여럿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사건이 정말 병상이 없어 생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아니다. 이 안타까운 죽음의 진짜 원인은 병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염병 진료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는 환자 10명 중 8명에서 가벼운 독감처럼 심각한 증상이나 후유증 없이 지나간다. 폐렴처럼 증상이 심해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10명에 2명 정도이다. 만약 대구시 보건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 중 증상이 심하거나 고위험군을 선별적으로 입원시켰다면 병상은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대구지역 환자 1100여 명 중 중증환자만 선별해서 입원시켰다면 220병상 정도만 필요했고, 이미 확보된 병상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13번째 사망환자처럼 병상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사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중환자일수록 지역 내 병원 입원시켜야

감염병 진료시스템이 없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대구경북지역 병원에서 책임져야 할 청도대남병원 코로나19 환자를 부산 병원으로 이송하다 사망하는가 하면,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다 대학병원 응급실 여러 곳이 폐쇄되는 바람에 응급환자가 입원하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세상을 떴다.

코로나19 확진검사를 기다리다 지친 대구 환자가 부산까지 가서 확진을 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중환자일수록 이송 도중에 사망할 위험이 높으니 지역 내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고, 부산까지 이동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충분한 수의 선별진료소를 운영해야 했다.

외국 감염병 전문가들은 한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적어도 한 달 이상 지속하고 환자 수가 약 9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확진자 수가 2000여 명일 때 감염병 진료시스템이 없어서 벌어지는 이 같은 혼란을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조만간 우리가 신문방송에서 보던 중국 우한의 모습을 대한민국에서 다시 볼 수도 있다. 외국 전문가의 전망을 무작정 믿고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발생 가능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감염병 진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병의원에서 진료받도록 한다. 감기 환자는 1차 동네의원에서, 호흡곤란 같은 폐렴증상이 있는 사람은 2차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중환자는 3차 음압격리병상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하도록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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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서 직원들이 28일 코로나19 자가격리자를 위해 즉석밥, 생수, 라면, 통조림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호 세트를 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네의원 중 원하는 곳을 호흡기 진료 전담의원으로 지정해 마스크, 보호복, 코로나 확진검사를 지원해야 한다. 현재 의심 환자가 몰려들어 과부하 상태에 놓여있는 안심병원의 부하를 줄어주려면 동네의원에서 경증환자를 맡아줘야 한다. 국민이 동네의원을 찾도록 하려면 안전한 진료환경과 확진검사능력을 갖춘 전담의원을 지정해야 한다. 전국에 2000~3000개 전담의원만 있으면 하루 평균 10만 명 정도의 감기 증상이 있는 환자를 적절하게 진료할 수 있다.

2차 진료를 담당할 감염병 전담병원은 폐렴증상이 있는 환자에 대한 선별진료와 함께 코로나19 입원환자 진료를 담당한다. 일평균 약 8000명에 달하는 폐렴증상 환자를 진료하려면 전국에 종합병원 약 200개가 필요하다. 정부가 지정한 안심병원 91개만으로는 폐렴환자 진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감염병 전담병원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병상을 비우고 코로나19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료하는 것이다. 그래야 병상이 없어서 기다리다 환자가 잘못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 환자 수에 맞춰 최대 1만개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국회는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정부는 재정적 보상을 포함한 적절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각 시·도 방역망, 국립의료원·전문가 포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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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교수

환자의 중증도를 선별해서 입원시키는 체계도 신속하게 도입해야 한다. 적어도 한 달 이상 지속할 장기전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려면 경증환자까지 입원시켜 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상과 마스크, 보호복 같은 물자도 부족하지만 진짜 문제는 의료인력 부족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경증환자를 돌보다 지치면 정작 중증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없고 감염되는 의료진이 늘어나게 된다. 한 번 의료진이 감염되면 진료공백과 의료진 감염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중국에서 발생한 의료진 감염의 3명 중 2명은 우한시에서 발생했다.

지금 대구경북처럼 코로나19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상황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고,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감염이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밀집해서 모여 있는 요양병원, 요양원, 정신병원, 복지시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고, 대부분 감염을 관리할 수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1.5배 많고, 정신병원은 2배 많다.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입원환자 중 절반 가까이는 지역에서 돌봐줄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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