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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자·전문가 공동 선언

작성자 : 관리자 2020.12.17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자 · 전문가 공동 선언

 

우리는 산업재해, 화학물질 누출사고, 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고민하는 학계 연구자들입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는 안전보건 전문가도 있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도 있고, 산업재해, 환경오염 피해, 사고와 재난 피해자를 돕는 법률전문가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산재와 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기업이 법을 위반한 결과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들어도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이 비극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간절한 마음으로 촉구합니다.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산되는 위험을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 값이 안전 비용보다 싼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위험을 관리하는 데 소홀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위험을 외주화하고 위험관리의 커다란 공백을 만들어 비용을 절감하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증폭된 위험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의 죽음의 행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천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했는데, 2020년에도 이천냉동창고에서 38명이 화재로 사망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 그리고 구의역 김군과 같은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 아픈 일들을 모두 열거할 수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도 산재사망으로 하루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2012년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주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고,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은 기업이 배출하는 환경오염물질에 노출되는 피해를 감내하면서 산단 노후시설로 인한 화학 사고에 대한 불안까지 떠안고 있습니다. 최소한 78명이 사망하고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도 규명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범 기업의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흡입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폐했던 임원은 2심에서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선장이나 해운사 대표는 징역형을 받았지만 관련 공무원 처벌은 한 명 뿐입니다. 안전에 관한 법을 고의로 혹은 반복적으로 위반하고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국민 10만 명이 동의해서 중대재해기업 처벌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이 모두 법안을 발의했고 이미 122일 공청회도 했지만,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국회 법사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심의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산재 유족들은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110일까지 열리는 12월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키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새로 만드는) 제정법이라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 많고 여러 가지 검토해야 할 사항이 상당히 많은 법이다라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하고 나서도 부결된 법안이 2건이며, 임기만료 폐기는 47건이나 됩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기약이 없습니다. 발의된 여러 법안의 차이에 대해서는 발의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른 합의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시간 내에 사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법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 대해서는 사회적 토론이 충분히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당 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수 차례 약속했는데도 국회에서 공청회를 넘어선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법안이 정말로 명확성의 원칙이나 책임주의에 반하는지, 산재 범죄의 고의성에 비춰볼 때 정말로 처벌이 과도한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체계로 충분한지 등의 의문에 한국 사회는 정면으로 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정의의 보루로서 법원이 그간 기업에게 온당하게 책임을 추궁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현재 발의된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국민의힘 안에서 누락된 징벌적 손해배상조항은 꼭 포함되어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미 약 20개 법률에 들어와 있는 제도로 기업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안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4년 유예조항도 우려가 됩니다. 산재사망 10명중 6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사내하청의 규모를 50인 미만으로 정하여 위험을 전가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유예할 게 아니라 원청이 있는 경우는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고 영세 사업장의 경우 정부가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다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할 일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모든 기업에 전면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 학계 전문가들은 국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이번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반드시 제정하라.

 

2.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야 한다.

 

3. 산재사망이 집중되고 있는 50인 미만 소기업에 대한 유예기간 없이 전면 적용하라

 

 

20201217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자 전문가 일동

 

[보도자료] 지지선언 참여자 명단은 보도자료 원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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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자·전문가 공동 선언 기자회견>

 

 

보건의료전문가 발언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지금 코로나로 엄중한 시점입니다. 이에 정부는 2.5 혹은 3 단계의 거리두기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멈추어라, 거리를 두어라라는 명령이 수행되려면, 각자도생하여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같이 살기 위한 대한민국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로 인한 고통만이 아니라, 그 이후를 생각하고 솔선해서 준비해야 할 진영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넘어가겠지, 라는 식의 모습으로, 전혀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business as usual이 될 것처럼 요구하는 재계와 행정의 책임자들, 그리고 이러한 책임자들의 로비를 받고 있는 국회는 특히 재해에 관한 한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1980년 전두환씨의 국보위에서 만들어 낸 산업안전보건법은 지금까지 40년 동안 적용되었지만, 산재를 줄이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작업장에서 떨어지고 끼고 폭발해서 죽는 사람들이 매년 1000명에 이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직도 여전합니다. 지금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이라 하지만, 그 내용이 산업안전보건기술법이었으며, 사업장 내부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 외부 서비스 기관이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고 당연하였고 유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조직 내의 근본원인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기술자와 외부 전문가의 부족에서 찿도록 하였으며, 그를 통해 조치를 했다는 변명의 빌미만을 제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나몰라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조직이 나서서 같이 돌보지 않으면 조직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결국 산재를 겪는 비정규직, 하청 기업 종사자들에게 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같이 해결해 나가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산재에 대한 지원과 처벌이 단순히 중대재해의 수습이 아니라 그 재해의 원인에 대한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재해가 아니라 중대재해의 경우 그 원인에 대한 처벌과 지원이 가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그를 통해 조직이 바뀌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결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어야 합니다.

 

코로나로 모든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서 각자도생하면서 뒤쳐지는 사람들만 떨어져 버리는 이 시점, 지금이야말로 사회가 바뀌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위해 지금 당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