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OCIATION OF PHYSICIANS FOR HUMANISM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천’이다.
성명과 논평
쿠팡과 SPC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망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다. 제주에서 고정야간근무를 반복하던 배송 기사가 새벽 운전 중 사망한 사례, 최근 SPC 계열 공장에서 연속 6일 야간근무 뒤 귀가 후 숨진 것으로 알려진 사례(언론 보도 기준), 쿠팡 물류센터에서 올해에만 복수의 심혈관계 사망이 보고된 사례 등은 모두 과로 재해의 전형적 양상을 보여준다. SPC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과로사로 산재승인을 받은 사례가 세 건 있었고, 설비 점검 또는 라인 작업 중 발생한 끼임·협착 사고로 세 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유형은 달라도, 이 사건들은 심야노동·연속근무·회복 부족이라는 동일한 조건 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과로사는 어느 하루의 무리로 발생하지 않는다. 수면 박탈, 교대제의 불규칙성, 야간 시간대 노동이 반복되면서 회복해야 할 시간이 지속적으로 축소될 때 신체는 점차 부담을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누적된 피로는 어느 순간 급성 심혈관 사건으로 이어지며, 여러 사례에서 실제 사망 당일이 아니라 사망 전 수일·수주의 근무 패턴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쿠팡의 새벽배송·야간 물류작업 종사자의 상당수는 고정야간근무 또는 장시간 야간노동에 노출돼 있고,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피로가 축적되는 구조 속에 있다.
사고 사망 역시 과로와 분리해 이해할 수 없다. 새벽 0-5시와 같이 인체 기능이 가장 저하되는 시간대에는 각성도와 주의력이 감소하며, 반복작업·설비조작·운전 업무의 오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인간의 생리적 특성이다. SPC 야간 끼임 사고나 쿠팡 야간 물류작업 중 발생한 중대 재해는 단일 기계 요인의 문제가 아니라 연속근무와 누적 피로 상태에서 위험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설명된다.
택배 과로사 문제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논의는 시작되었으나, 핵심 의제에서는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심야노동을 운영하는 쿠팡은 심야배송 방식 재검토, 노동시간·작업강도 정보 공개 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협의가 지연되어 왔다. 기업의 책임 있는 참여 없이는 대책 마련이 불가능하다.
SPC의 경우 교대제 개편을 약속했음에도 최근 연속 6일 야간근무가 확인된 사례는 현장의 노동시간 관리가 여전히 위험 수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제빵·식품 제조업은 공정 특성상 연속 야간근무가 일상화되어 있고, 단순한 제도 발표만으로는 위험을 차단하기 어렵다. 연속근무 제한·야간노동 총량 관리·실질적 휴식권 보장이 포함된 교대제 재설계가 필요하다.
사고조사에서도 문제는 반복된다. 국내 재해조사는 사고 순간의 기계·작업요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고, 노동자의 직전 근무 패턴·연속 야간노동 여부·수면 부족 상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사고사와 과로사를 인위적으로 구별하게 만들고, 사망 원인을 협소하게 해석하여 재발 방지 대책의 단서를 놓치게 한다.
한국의 법·제도는 아직 심야노동 자체를 위험 노동으로 규정하는 기준이 부족하다. 주 52시간 상한은 존재하지만, 인체 부하가 극대화되는 시간을 규제하는 장치는 없다. 특히 플랫폼·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법적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심야배송과 장시간 야간노동이 사실상 무제한 가능하다. 이는 과로사와 사고사를 모두 예측 가능한 위험 상태에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면 유럽의 여러 국가는 심야노동을 별도의 고위험 노동으로 규정하고, 24시간 기준 야간노동 8시간 초과 금지(EU를 비롯 32개 국가), 휴식권 강화(독일), 플랫폼노동자 노동시간 통제(스페인)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규제를 운영해 왔다. 이는 심야노동이 단순한 시간 배치가 아니라 건강·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임을 반영한다. 한국도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다.
결국 이 사망사건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로사와 사고사는 다른 형태를 띠지만 동일한 위험요인에서 비롯된 구조적 재해이며, 기업의 책임 있는 참여와 정부의 강력한 대책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다음 다섯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쿠팡은 노동시간 운영과 심야배송 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대제 개편 논의를 포함한 사회적 대화에 즉시 책임 있게 참여해야 한다.
둘째, SPC는 연속근무 제한·야간노동 총량 관리·휴식권 보장 등을 포함한 실효적 교대제 재설계를 제시하고 현장 적용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기업은 모든 사고조사에서 과로를 필수 조사 항목으로 포함해야 한다. 연속근무·심야노동·휴식 여부는 재해 원인을 규명하는 핵심 요소다.
넷째, 정부는 쿠팡·SPC의 과로·사고 재해 현황을 사업장 뿐 아니라 원청 기업 단위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업차원의 산재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정부는 야간노동 규제를 유럽 수준으로 강화하고, 0-5시 심야노동 총량을 줄이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충분한 회복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2025년 1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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